공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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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시 : 2020-06-03 13:5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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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일본 언론 매체 사료집 세트 발간 안내
3·1운동 당시 조선 관련 기사를 총망라 일본인이 본 100년 전 조선과 조선의 사람들!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며 『3·1운동 일본 언론 매체 사료집』 편찬위원회는 3·1운동 당시 일본에서 발간된 다양한 신문과 잡지의 관련 기사들을 3·1운동에 대한 기초 자료로 집성하여 총 6권의 사료집으로 담아냈다. 이를 통해 종래 3·1운동에 대한 일본의 반응을 알려주는 자료로서 반복적으로 언급되었던 일부 매체 외에, 새로운 매체를 통해 연구의 다양성을 확대하고 그 외연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이 사료집은 3·1운동과 직접 관련된 기사만을 선별적으로 수록하기보다는 3·1운동을 통해 촉발된 정치, 사회, 경제, 문화를 비롯한 당시 조선 관련 기사를 망라하였고, 1919년 3월부터 12월 말까지(일부 매체는 1920년 초반까지 해당)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이 시기 관련 연구를 위한 자료적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목차
제1권 [도쿄아사히신문(東京朝日新聞)] 편 일본 3대 일간지의 하나인 [아사히신문]은 1879년 오사카에서 창간되었으며, 1888년 창간된 [도쿄아사히신문]과 각각 서일본-동일본을 아우르는 양 체제의 신문이었다. 1940년 [아사히신문]으로 제호를 통일하여 오늘에 이르며, 일본 신문사 중 가장 진보적 성향을 띤다. 이 책에는 [도쿄아사히신문] 1919년 3월 1일~12월 26일에 실린 3·1운동 및 당시 조선의 정황을 알려주는 546편의 기사와 12점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제2권 고쿠민신문(國民新聞)·도요케이자이신보(東洋經濟新報)·후조신문(婦女新聞) 1890년 2월 창간된 [고쿠민신문]은 당시 정부계 신문의 대표적인 어용신문이며, 정권에 밀착된 모습을 보였다. 창간 당시와 달리 제국주의적·국가주의의 입장을 견지했다. 여느 신문과 달리 조선에 대해서도 풍부한 정보를 토대로 조선 사정을 상세히 알려주는 보도를 했다. 1895년 11월 창간한 경제전문지 [도요케이자이신보]는 자유주의로 일관한 논조를 지녔으며, 여느 매체보다 돌출된 주장이 주목을 끌었다. 한편 근대 일본의 대표적인 여성언론매체인 [후조신문]은 1900년 5월부터 약 43년간 발행된 주간지로, 신문을 통해 여성의 지위 향상을 꾀하며 여성들의 자각을 촉구했다. 이 책에는 이들 세 신문에서 1919년 3~12월에 실린 3·1운동 및 당시 조선의 정황을 알려주는 312편의 기사와 14점의 사진이 실려 있다. 제3권 중앙공론(中央公論)·교육시론(·育時論)·사회급국가(社·及·家)·아등(我等)·헌정(憲政) 1887년 창간되어 현재까지도 발행되는 일본의 대표적인 종합잡지 [중앙공론]을 비롯하여 교육([교육시론]), 정치·경제·국제 문제([사회급국가], [아등]) 등을 주요 이슈로 다룬 잡지의 기사를 수록했다. 일간지가 아닌 잡지에 실린 글들이어서 편수는 적지만 분량이 대체로 길며, 현상에 대한 분석과 비평, 진단과 전망, 제언 등을 담은 글들이 많다. 3·1운동에 대해서도 일간지에서 볼 수 없는 논조를 보여 준다. 1919년 3월~1920년 2월에 실린 글 가운데 83편이 수록되어 있다. 사진은 없다. 제4권 오사카마이니치신문(大阪·日新聞) 1876년 창간된 [오사카일보]의 제호를 계승하여 1888년 11월 발행되기 시작한 [오사카마이니치신문]은 1943년 [도쿄마이니치신문]과 통합하여 오늘날 [마이니치신문]에 이른다. 철저한 사실보도와 진보적 경향의 논조를 보이는데, 1919년 3월의 경우 3·1운동 관련 기사의 수와 양에서 다른 신문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점이 두드러진다. 1919년 3~12월에 실린 3·1운동 및 당시 조선의 정황을 알려주는 885편의 기사와 32점의 사진이 실려 있다. 제5권 요미우리신문(讀賣新聞) 에도 시대 신문 판매상들이 목판으로 찍은 신문을 큰 소리로 ‘읽으면서(讀) 팔았던(賣)’ 데서 제호가 유래한 요미우리신문은, 현재 일본에서 최대 발행 부수를 자랑하는 대표적인 전국 단위 일간지다. 1919년 3~12월에 실린 3·1운동 및 당시 조선의 정황을 알려주는 598편의 기사와 12점의 사진이 실려 있다. 제6권 요로즈초호(萬朝報)·미야코신문(都新聞) [요로즈초호]와 [미야코신문]은 근대 초기 일본의 대표적인 상업적 대중지로 손꼽힌다. 1892년 도쿄에서 창간된 일간지 [요로즈초호]는 스캔들 기사를 판매 전략으로 삼는 한편 번역소설을 시작으로 문예란에 힘을 쏟았다. 이후 사회주의와 노동 문제에도 관심을 나타내며 사회비판성이 강한 신문으로 변신했다. 1930년 [도쿄마이유신문(東京每夕新聞)]에 합병되었다. 1884년 창간한 [금일신문]에서 1888년 이름을 바꾼 [미야코신문]은 구미 소설의 번안 소개를 비롯하여 참신한 기획물을 선보였으며, 탐정 관련 기사나 연극 연예계 기사 등 예능 방면으로 특화된 성격을 보였다. 1942년 [고쿠민신문]과 합병되어 [도쿄신문]으로 오늘에 이른다. 이 책에는 두 신문의 1919년 3~12월에 실린 3·1운동 및 당시 조선의 정황을 알려주는 612편의 기사와 25점의 사진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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